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5세 (문단 편집) == 기타 == * 즉위 이후인 1910년 에드워드 마일리우스라는 사람이 조지가 젊은 시절[* 조지가 몰타에 있었던 건 해군 장교 시절이다.] 몰타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고 메리 왕비와의 결혼은 [[중혼]]이라는 허위 사실을 출판했다. 같은 소문은 1893년에 처음 출판되었으나 조지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심각해졌는데 '''에드워드가 조지 5세를 중혼으로 고소한 것이다.''' 그러나 영국 재판부는 이 재판을 기각해버렸는데 영국 법에서는 국왕에게 죄를 물을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영국 국왕]] 문서 참고. 한편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에드워드 마일리우스는 체포되어 재판을 거쳐 범죄적 비방 행위로 1년을 복역하였다. * [[왕들의 취미|그의 취미]]는 [[우표 수집]]으로, 조지 5세의 우표 수집 컬렉션은 역대 [[영국 국왕]]들에게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왕세자 시절에 보좌관이 아침에 출근해서 조지에게 농담 삼아 "전하, 제가 오늘 신문을 보니까 [[덕질|어떤 바보멍청이가 우표 한장에 수백 파운드나 되는 돈을 썼다]]는 기사가 다 실렸더군요."라고 말을 건네자, "내가 바로 그 바보멍청이일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외에 새 사냥도 광적으로 좋아했다. 영국에서는 농담삼아 '새 학살자'라고 부를 정도. * 위에 언급된 대로 사냥을 매우 잘했는데, 새 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들의 사냥에 전부 조예가 있었다. 대관식 후 인도를 순회할 때 네팔에서 벌어진 사냥에 참여해 '''호랑이 21마리, 코뿔소 8마리와 곰'''을 열흘에 걸쳐 사냥하였다. 한술 더 떠서 1913년에는 번햄 경의 자택에서 '''6시간 동안 꿩 1000마리'''를 잡았고, 이때는 본인도 너무 심했다고 인정했다. * 그러나 이런 몇몇 취미생활을 제외하면 극도로 검소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 [[에드워드 7세]] 스타일의 화려한 사생활과는 잘 맞지 않는 타입이기도 했고, 군인으로서의 생활습관이 거의 몸에 배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라면 조지 5세의 점심식사는 수프 한 그릇이 전부였다고 한다. 심지어 후식으로 먹을 케이크를 만들 때에도 밀가루를 낭비하지 말라며 먹고 남은 빵 부스러기로 만들게 했을 정도. * 또한 [[문신]]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대표적인 일화로 1881년 일본에 방문했을 때 팔에 용문신을 새기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영국의 신문사들이 당시 말단 선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화살이 코를 관통하는 문신을 새겼다며 일제히 오보를 쏟아내면서 영국 의회에서까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런 소동은 조지 5세가 본국으로 돌아와 사실무근임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 '백성은 곧 나를 일컫는다.'는 발언이 유명한데, [[루이 14세]]가 했다고 알려진 '[[짐이 곧 국가다]]'와 매우 극명하게 대비되는 말.[* 실제로는 루이 14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 그의 이름을 딴 전함이 바로 [[킹 조지 5세급 전함]]으로, 2차례 건조되었다.[* 첫 번째는 건조되기 전에 HMS Monarch로 이름이 바뀌었으므로 제외하면 2차례.] 첫 번째는 [[킹 조지 5세급 전함(1911)|1911년에 건조된 킹 조지 5세]]로, 당시 조지 5세가 즉위하여 이름이 붙었다. 두 번째는 [[킹 조지 5세급 전함|1939년에 건조된 전함으로]], 2차 대전기 영국 해군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당시 즉위했던 에드워드 8세가 자신의 퇴위를 예감하고 조지 5세의 이름을 붙였다. 이후 즉위한 조지 6세 때는 함명을 바꾸자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왕은 아버지를 기념하고 싶다고 사양하였으며, 2번함에는 형을 기념하여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붙이고 3번함에는 자신을 지칭하는 듀크 오브 요크를 붙인다. * [[파리 지하철 1호선]]에는 조지 5세의 이름을 딴 조지 5세 역이 있다. * 키는 168cm [[앨버트 공|할아버지]](180cm), [[에드워드 7세|아버지]](173cm), [[앨버트 빅터|형]](185cm)보다 작고, [[테크의 메리|아내]](168cm)와 [[에드워드 8세|장남]](168cm)[* 젊은 시절 키는 170cm이다.]이랑 키가 같다. 그래도 아내의 키가 큰 덕분에 조지 5세의 아들들은 대체적으로 키가 크다. 에드워드 8세는 키가 작지만, 차남 조지 6세의 키는 175cm로 당시 영국인 남성 평균 키보다 컸으며, 삼남 [[글로스터 공작 헨리]]의 키는 185cm, 사남 [[켄트 공작 조지]]의 키는 180cm로 [[장신]]이다. * 그가 재임했던 기간에 [[대영제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다. 다시 말해 조지 5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군주였다.[[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largest_empires|#]] * 인도의 황제로도 즉위식을 가졌는데 테크의 메리와 함께 인도로 직접가서 세기의 행사를 했다. 그러나 당시 인도의 마하라자들은 영국 관리들의 닦달로 인해 참석하여 조지 5세에게 신하의 예를 보이긴 했지만 떨떠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바로다의 샤야지로 3세는 세 번 인사를 해야하는데 한번 인사하고, 뒷걸음쳐서 나가야 하는데 그냥 등을 돌려서 나가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살짝 비꼬는 미소를 보여 영국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https://www.youtube.com/watch?v=i9-t5y_qYro|#]],[[https://medium.com/history-in-bytes/indian-king-who-showed-his-back-to-king-george-v-a58268a885ac|#]] * 슬하 5남 1녀를 두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손주들 중 아들 수로는 [[빅토리아 유지니|스페인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슬하 5남 2녀)[*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영국의 베아트리스(1857)|베아트리스 공주]]의 고명딸.]와 함께 공동 2등이다. 공동 1등은 6남 1녀를 낳은 [[빌헬름 2세]]와 6남을 낳은 [[마르가레테 폰 프로이센|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자녀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